장생도라지의 탄생

장생 도라지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순수한 애착과 경외심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우리의 장생도라지

죽지 않는 도라지 재배의 도전

이성호씨는 사람으로 태어나 의로운 일 한 가지는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죽지 않는 도라지의 재배를 결심하였습니다오래된 도라지가 정말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선약이 된다면 이를 대량으로 재배하여 많은 환자들에게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홍수에 떠 내려가는 사람 하나만 구해도 칭찬을 받을 일인데도라지를 재배하여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진정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도라지의 오래 살이 재배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도라지 재배를 위해 얻어 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자식들은 거지꼴로 변해갔고 그런 이성호씨를 동네 아이들조차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이성호씨는 소금 한 자루와 괭이를 메고 인적이 없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어갔습니다세상의 반대가 없는 그곳에서 오직 도라지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신념과 정성을 다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며처자식의 배고픔을 모른척 해야 하는 고통 따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맹수가 우글거리는 산속에서 가재개구리칡뿌리로 연명하면서 온 산의 도라지를 움막 근처로 옮겨 심거나달라 보이는 도라지를 교배시켜 보기도 하는 동안 이성호씨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을 잃어 갔습니다어쩌다 만나는 심마니들이 치렁치렁한 머리에 퍼렇게 눈빛만이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도망갈 정도였습니다.

신기한 경험

열네살의 이성호 소년이 동네 노인과 산에서 나무를 하던 때였습니다당시로서는 많은 나이이던 오십대의 그 노인은 오래된 질병으로 언제나 처럼 힘겹게 나무를 한 짐 해 놓고 쉬던 중에 오래된 식물의 뿌리를 캐어 먹고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저녁이 다 되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자 이성호 소년은 깨우기를 포기하고 혼자 산을 내려와 동네 어른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는데어른들은 그 사람이 필시 좋은 약초를 먹은 것이며곧 일어날 것이니 걱정 말라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는 사흘 뒤 이성호 소년이 다시 나무를 하러 가기 위해 노인의 집을 찾았으나노인은 없었으며 산속의 그 자리에서 여전히 자는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이성호 소년이 나무 한 짐을 한 뒤 흔들어 깨우자 비로소 일어난 그 노인은 병이 깊어 죽을 날이 멀지 않다던 평소 모습과 달리 기운차 보였으며그 후 젊은 사람 못지않은 건강을 되찾아 갔습니다그 노인이 먹은 것이 오래된 도라지였으며전해 내려오는 얘기로만 생각하던 오래 묵은 도라지는 산삼보다 낫다는 말을 직접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이면 수명이 다하는 도라지를 죽지 않게 재배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제 아무리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라도 도라지를 오래 기르는 방법을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오직 도라지 농사를 위해 독학으로 글을 깨우쳐 수많은 한방서적을 뒤져 보았으나모두가 3년짜리 나물도라지를 이용한 처방과 약효 뿐이었습니다.

결국 갖은 농법과 비료를 써가면서 직접 실험을 해 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수 천평의 밭에 각기 다른 방법으로 심어놓은 도라지들은 잘 자라다가도 3년만 되면 어김없이 모두 죽어 버렸습니다그러면 밭을 갈아 엎고는 다시 도라지 씨앗을 뿌렸습니다이렇게 도라지를 심고 썩이는 일을 수년간 반복하는 가운데 살림은 형편없이 기울어 갔습니다

우리 몸에 유용한 작물, 도라지 맛과 약효가 으뜸입니다.

깨달은 섭리

그렇게 산속에서 도라지에 미쳐 있은지 5년째가 된 어느 날, 그 어느 식물도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땅에서 다른 곳의 도라지보다 훨씬 기운차게 돋아난 도라지의 순을 발견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한 달쯤 전에 버리기가 안타까워 땅에 꽂아 넣듯 심어둔 썩은 도라지의 뿌리에서 난 새순이었습니다. 

숭고한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15년 동안 농사기술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해 보았으나 3년을 넘길 수 없던 도라지의 생명의 비결은 자연에 있었습니다. 도라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만든 갖은 비료와 영양분이 아니라 순수한 땅의 기운이었던 것입니다. 즉 3년 정도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필요로 하는 기운을 모두 흡수한 도라지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척박한 황토땅에서 새로운 기운을 먹으며 기운차게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성호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둔한 인간의 무모한 노력을 가상히 여겨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지혜를 깨우쳐 주신 하늘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때가 도라지에 매달려 15년이 지난 1970년 이었으며, 1988년에 이르러 그는 22년근까지 수천평의 10년 이상된 도라지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성공, 좌절

 

돌이켜 보면 이 시기가 그에게는 개발과정 못지않게 어렵고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0년 넘은 약도라지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 각처에서 도라지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가족들은 그 동안의 진절머리 나는 고생을 접고 잘 살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그러나 이성호씨는 한 뿌리도 팔수가 없었습니다.

오래된 도라지가 왜어떻게 좋은지를 밝혀야 했으며이성호씨 스스로 몇 년짜리부터 약도라지라 해야할지 조차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명확한 근거도 없이 도라지를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는 가족들 앞에서 돈 다발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가장의 심정은첩첩산중에서 기약 없는 외로움에 떨 때보다 더 아팠습니다.

도라지를 죽지 않게 키우는 일 보다 더 막연해 보이는 이 문제로 몇 년을 노심초사하면서 이성호씨는 지쳐갔습니다차라리 포기하고 살았을 때가 나았다는 가족들의 원망을 들으며죄스러움과 자책에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른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해야만 했습니다그것은 그의 인생을 걸었던 도라지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성호씨는 단순히 그 시점에서 도라지 재배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도라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기 시작했습니다지금까지 보다 얼마나 더 크고 무서운 고통이 따를지 알 수 없는 이 일을 후손 중 누구라도 다시 시작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수십 년의 기록을 수를 놓듯이 적어 온 공책 300권을 모두 불에 던졌습니다

손때와 땀에 절은 공책들이 하나 하나 재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타 들어가는 아픔과 서러움에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연근별로 술에 담아놓은 도라지들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정성을 다해 흙을 털어내어 담아 놓았던 도라지를 한병 한병 버리던 중에 한가지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그것은 20년근과 21년근 병의 술의 색깔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분명히 같은 날같은 시각에 담아놓은 것이었는데 21년근 도라지에서 우러나온 색깔은 훨씬 짙은 빛을 띠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던 일을 잊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다른 점이라고는 불과 1년이라는 나이 뿐토양이나 재배방법도 같았던 이들이 이렇게 다른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고어쩌면 이것이 그가 그토록 고민하던 문제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캄캄한 동굴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밝혀지는 실체, 특허

이성호씨는 22년근 도라지를 들고 대학의 교수님들을 찾아가 분석을 부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연수가 오래 되어도 도라지는 도라지일 뿐이라는 냉담한 반응으로 수없이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경상대학교 식품공학과에서 성분분석을 할 수 있었고그 결과 3년근 일반 도라지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이를 근거로 특허를 의뢰하였는데처음에는 실성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흔한 작물의 재배법을 오래 키운다 하여 쉽사리 특허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입니다그러나 수천 년 역사에서 사례가 없었듯이 평범한 도라지로 볼 수 없는 특성과초인적 집념과 열정으로 찾아낸 그만의 세밀한 관리방법이 끝내 인정을 받아 유례없는 재배법 특허를 얻게 된 것입니다그 후로도 그는 또 다시 빚을 내 가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그 결과들은 장생도라지의 무한한 개발 가능성을 속속 보여주고 있습니다.